“아이스크림 가격이 이상해!”

대리점·영업소서 판매하한가 지정…“담합의혹”

 

빙과시장에서 담함이 의심되는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 슈퍼마켓 등 소매점 점주들은 빙과제조사 대리점이나 영업소가 제시하는 판매가를 강요받고 있다. 고객들이 아이스크림 매대에서 상품을 고르고 있다.

 

긴 장마가 끝나고 아이스크림 특수가 기대되는 폭염이 시작됐지만, 슈마마켓 점주들은 아이스크림만 보면 울화가 치민다. 특수는커녕, 정작 소비자들과 접점에 있는 점주들은 아이스크림 가격 결정에서 배제된 채 옴짝달싹 못하고 이미 정해진 ‘가격의 룰’을 철저히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8월 18일 소매업계에 따르면, 슈퍼마켓 등 소매점 점주들은 납품 받는 빙과제조사 대리점이나 영업소가 제시하는 판매가를 군말없이 지켜야 한다. 대리점이나 영업소가 정한 가격 이하로는 마음대로 할인이벤트를 진행할 수도 없다. 반대로, 대리점이나 영업소가 가격을 인상하면 울며겨자먹기로 판매가를 올릴 수밖에 없는 유통구조다.

실제로 장마 끝 폭염이 시작된 8월 17일, 서울 양천구의 한 재래시장에 자리한 3곳의 슈퍼마켓에서는 빙그레의 바류 아이스크림 ‘메로나’가 모두 1개당 400원이었다. 같은 날 서울 강서구의 또 다른 슈퍼마켓에서는 1개당 500원에 판매했지만, 아이스크림 냉장고 전면에 ‘5개 2000원’이란 안내문구를 붙이고 할인행사를 벌이고 있었다. 이곳도 1개당 400원인 셈.

사실상, 서울 양천구와 강서구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빙그레 ‘메로나’는 400원이 정가처럼 유통되고 있었다. 하지만, 포장지 어디에도 가격은 표시돼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400원이란 가격은 슈퍼마켓 점주들이 정한 것일까.

한 슈퍼마켓 점주는 “빙과류 판매 하한가는 빙과제조사 대리점이나 영업소가 정한다”며, “대리점이나 영업소가 제시한 가격보다 더 비싸게는 팔 수 있어도 그 가격 이하로는 판매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점주는 또, “대리점이나 영업소가 정한 가격 이하로 판매할 경우 납품이 끊길 수 있다”며, “실제로 몇 년 전, 아이스크림 할인이벤트를 진행하며 하한가를 어기고 더 싸게 팔았다가 한 동안 납품 받지 못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빙과류 제조업체 담합 의심 정황

빙과시장은 과거로부터 롯데, 빙그레, 해태, 삼강의 4강 체제로 시장을 지배했다. 현재도 롯데삼강이 롯데푸드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4강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빙과류 대리점이나 영업소는 제조사와 직결된 구조. 빙과류 제조사의 가격 담합이 의심되는 정황이 시장에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2018년 2월 23일자로 ‘아이스크림업체담합’이란 제목의 청원이 올라있다.

청원인은 “몇 년 전부터 계속 담합을 시도하더니 아이스크림 4사가 담합하여 서로 출혈경쟁하지 말자며 아이스크림업체 교체도 못하게 하고 가격도 담합하여 모두 가격을 맞춰야 한다”며 “받고 싶음 받고 아님 말라는 식”이라고 밝혔다.

이 청원인은 “일반 마트와 편의점 모두 가격을 같게 한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왔는지 대체 저처럼 소규모 영세업자는 장사를 하지 말라는건지”라며, “아이스크림 업체의 횡포를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빙과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4강 체제의 끈끈한 관계는 2007년 3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부당한 공동행위)조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당시 롯데제과, 해태제과식품, 빙그레, 롯데삼강 등 빙과제조 4개 제조사는 빙과제품 가격경쟁이 치열해지자 빙과영업담당 임원들을 중심으로 수시로 모임을 갖고, 거래질서 안정화와 가격인상을 협의해 실제 실행한 사실이 밝혀졌다. 공정위가 4개 빙과 제조사에 부과한 과징금은 45억원에 달했다.

당시 공정위 의결문에 따르면, 4개 제조사 상무 또는 이사급 임원들이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일정을 조율, 회합 장소를 정했다. 특히, 공정위가 일부 공개한 이메일 내용을 보면 “200~300원을 한꺼번에 인상할 수 없을 것이니, 100씩이라도 가격인상을 시켜 가야겠습니다”라거나, “인상폭이 적어서 충격을 덜주고 잡음도 적게…현실적으로 조금씩 인상해 가는 것이 현명할 것 같네요”라는 등 구체적인 담합 증거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들의 담합 모의 이후 시장에서 판매되던 4개 제조사의 대표 ‘콘’ 제품이 같은 달 일제히 700원에서 800원으로 인상됐다는 점이다.

 

롯데제과, 빙그레, 롯데푸드, 해태제과식품 등 4강 체제로 유지되는 국내 빙과시장이 빙그레의 해테아이스크림 인수로 사실상 롯데계열과 빙그레계열 2강 체제로 전환될 예정이다. 자료=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

 

 

사실상 양강 전환담합 더 쉬워지나

올들어 빙과업계에 빅뉴스가 터졌다. 빙과시장점유율 2위 빙그레가 “지난 3월 31일 이사회 결정을 통해 해태제과식품(주)과 해태아이스크림(주)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고 4월 14일 공시했다.

이날 빙그레가 인수한 주식은 해태아이스크림(주) 보통주 100%인 100만주, 인수금액은 1400억원으로 공시됐다. 해태아이스크림(주)은 해태제과식품(주)이 올해 1월 아이스크림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신설한 법인.

빙그레는 해태아이스크림을 인수하면서 단숨에 업계 1위에 올랐다. 2019년 4/4분기 빙과류 제조사별 시장점유율은 롯데제과 28.1%, 빙그레 26.0%, 롯데푸드 15.0%, 해태제과식품 12.2% 순. 빙그레가 해태제과식품 인수를 완료하면 합산 시장점유율은 38.3%로 치솟는다.

문제는 독과점이다. 공정위는 1개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이거나, 3개 이하 사업자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75% 이상인 경우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한다. 이때 사업자 선정 기준에서 같은 계열 회사는 하나의 사업자로 분류한다. 즉, 롯데제과와 롯데푸드를 하나의 회사로 본다는 뜻. 이 경우 롯데계열 아이스크림 업체와 해태아이스크림을 인수한 빙그레의 시장점유율 합은 80%를 넘는다. 시장점유율 기준만으로는 롯데계열과 빙그레계열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분류돼 독과점 심사 대상이 된다.

공정위는 독과점 심사에서 시장점유율뿐만 아니라 실제로 독과점으로 인해 소비자의 피해가 발행하는지 여부가 중요한 판단기준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공정위가 독과점 우려가 농후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빙그레는 가격인상제한이나 공급의무화 등의 시정조치를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빙과업계에서는 빙그레의 해태아이스크림 인수가 무난히 완료될 경우 국내 빙과시장은 사실상 양강 체제로 전환돼 시장 왜곡이 더욱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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