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보다 하나로마트가 더 무섭다”

하나로마트, 의무휴업도 제외…‘농민’ 앞세워 골목시장 위협

 

농협 하나로마트도 의무휴업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8월 11일 서울 마포구 창전
동의 한 과일가게 건너편에 수입산 과일을 판매하는 하나로마트가 보인다.

 

농협 하나로마트도 대형마트에 적용되고 있는 의무휴업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농민을 보호한다는 선의의 취지로 의무휴업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대형마트와 동일하게 구성된 판매품목으로 골목상권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8월 1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농협 하나로마트가 수입농산물까지 버젓이 판매하면서 농민과 골목상권 보호는커녕 의무휴업 제외에 대한 특혜 시비가 일고 있다. 농민보호 차원에서 농협 하나로마트를 의무휴업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을 잃은지 오래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2012년부터 1월부터 중소상인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마트는 1개월에 2일을 의무적으로 휴업해야 한다. 대상은 크게 2가지. 첫째, 매장 면적이 3000㎡(약 900평) 이상인 대규모 점포로,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이 속한다. 둘째, 매장 면적이 ‘3000㎡ 미만이어도 대규모 점포를 경영하는 기업 등이 운영하는 점포로서, 음·식료품을 위주로 하는 종합판매 소매점도 해당된다. 이마트에브리데이·롯데슈퍼·홈플러스익스프레스 등 기업형슈퍼마켓(SSM)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바로 농협 하나로마트다. 2012년 1월 개정·시행된 유통산업발전법은 “연간 총매출액 중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른 농수산물의 매출액 비중이 51% 이상인 대규모 점포’는 의무휴업에서 제외시켰다. 농민과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농협 하나로마트를 고려한 특혜 조치였다. 대부분의 대형마트가 농수산물 매출액이 51%에 도달한다는 이유로 2014년 기준을 55%로 높였다. 이 역시 농협 하나로마트를 위한 배려였다.

 

수입농산물 버젓이…의무휴업 제외 설득력 잃어

하지만, 그간 유통업계에서는 일반 대형마트와 판매상품 구성이 비슷한데도 유독 하나로마트만 규제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농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수입농산품도 버젓이 판매하고 있다. 수산물은 물론, 가공식품과 공산품에서도 수입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특히, 농협 하나로마트는 농협경제지주 산하 농협하나로유통, 농협유통, 농협충북유통, 농협대전유통, 농협부산경남유통 등 자회사 5곳이 지역별로 분배해 운영하는 방식이다. 하나로마트를 운영하는 자회사는 대부분 주식회사로 일반기업이다. 농협경제지주는 2019년 매출액 5조7000억, 사원수 2145명에 달하는 유통공룡이 됐다. 농협 하나로마트가 의무휴업 적용 제외 대상이 맞느냐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일부 지역에서는 농협 하나로마트의 영향으로 해당 지역 상인들이 매출 하락을 호소하기도 한다. 소규모 슈퍼마켓과 식자재마트에서 식자재를 구입하던 음식점들이 농협 하나로마트로 몰리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농협 하나로마트 전주점은 지역 농수산품 매장을 줄이고 대규모 전자제품 판매점과 커피숍, 베이커리, 잡화용품점까지 대거 입점시키는 리모델링을 단행했다. 의무휴업을 적용받지 않고 연중무휴 영업도 보장됐다. 이후 전주지역 상인들은 “일반 대형할인매장과 다를 게 뭐냐”며, ‘골목상권 죽이기’라고 반발했다.

전국 농협 하나로마트 2200여곳 가운데 48곳이 의무휴업 대상인 매장 면적 3000㎡(약 900평)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로마트의 매장 면적이 3000㎡(약 900평) 이하라도 ‘농수산물 매출액 55% 이상’ 혜택이 없다면 기업형슈퍼마켓(SSM)과 동일한 규제 대상이 될 수도 있다.

 

8월 11일, 하나로마트 농협신촌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수입산 대형 과일통조림.

 

8월 11일, 하나로마트 농협신촌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중국산 볶음땅콩.

 

8월 11일, 하나로마트 농협신촌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일본산 가쓰오.

 

골목상권 매출에 직접적 영향

농협 하나로마트 인근 상인들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일례로, 8월 11일 오전 방문한 서울 마포구 창전동 서서울농협서강점 하나로마트에서는 콜롬비아산 바나나(1봉 2980원)를 비롯해 호주산 오렌지(5개 5980원), 뉴질랜드산 그린키위(12개 4980원)·골드키위(12개 8980원)·점보골드키위(8개 1만800원), 칠레산 레몬(2개 1480원), 멕시코산 라임(4개 4480원), 미국산 아보카도(2개 4980원)·자몽(2개 3980원)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서울농협서강점 하나로마트와 마주한 길 건너편에는 2평 남짓한 과일가게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 가게에서도 하나로마트와 동일하게 바나나(1봉 3000원), 키위(6개 3000원), 레몬(1개 700원), 아보카도(1개 1500원)를 판매한다. 만약 하나로마트에서 이들 수입산과일을 판매하지 않았다면 더 큰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은 자명하다.

과일가게 주인 김모(여·53)씨는 “우리 가게에서 파는 수입산 과일을 건너편 하나로마트에서도 판다는 사실을 기자에게 처음 듣는다”면서, “하나로마트에서 가게에 있는 과일을 팔지 않는다면 당연히 매출이 오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비슷한 사례는 더 있다. 서울 마포구 신촌의 또 다른 하나로마트. 전국 하나로마트 운영을 책임지는 심장부 ‘하나로유통’이 자리한 농협신촌복합빌딩 지상 1~2층에 자리한 하나로마트 농협신촌점이다.

농협의 자체 브랜드(PB, Private Brand)를 표방하는 ‘하나로굿’ 매장으로 표시된 2층에 들어섰다. 전국 방방곡곡 지역농협이 생산한 각양각색의 건강한 먹거리 제품들이 입구를 가득 메운 채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농협다움’도 잠시. 식자재 코너에 들어서자 이탈리아산 마카로니(500g 1850원), 미국산 팝콘(700g 2280원), 중국산 볶음땅콩(1kg 6600원)·튀김땅콩(2kg 1만5500원) 등 수입산 제품들이 선반 매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카페나 음식점에서 주로 소비하는 수입산 대형 과일통조림은 아예 한쪽 매대를 통차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일본산 가쓰오(150g 1만2990원)가 버젓이 매대에 놓여, 일본산 불매운동을 부르짖은 국민정서를 무색케 했다.

인근에서 식자재마트를 운영하는 최모(48)씨는 “예전에는 (농협신촌점) 하나로마트 3층 전체에서 식자재를 팔았는데, 지금은 없어져서 그나마 안심”이라며, “우리는 거래처를 두고 고정적인 매출이 발생하지만, 수퍼마켓은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형 슈퍼마켓 규제회피 롤모델?

국내 농민과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제공된 특혜가 엉뚱하게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규제 회피 수단으로도 전락했다.

기업형 슈퍼마켓(대기업이 운영하는 3000㎡ 미만의 체인소매점)은 대형마트와 마찬가지로 매월 두 차례 쉰다.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지정’을 골자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2012년 이후부터다.

하지만, 현재 모든 SSM이 의무휴업하는 것은 아니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SSM브랜드 ‘GS더프레시’의 ‘양천신은점’ ‘목동13점’ ‘목동7점’ ‘부천송내점’ ‘분당미래점’ 등 5개 수도권 매장은 현재 연중무휴다.

GS더프레시는 ‘법을 잘 지켜’ 법망을 피했다. ‘연간 총매출액 중 농수산물의 매출액 비중이 55% 이상인 매장은 의무휴업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이용했다. 대기업 SSM은 농수산물 판매에 특화된 유통채널이 아니다.

또한, 실제 농수산물 매출이 55%를 넘었다고 해도 의무휴업에서 무조건 제외되지도 않는다. 관련 조례에 의거, 지자체가 허가해야 가능하다.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 명령 면제 신청권을 증빙자료와 함께 첨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S더프레시가 의무휴업 대상에서 제외돼 365일 영업이 가능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으로 농협 하나로마트에 주어진 특혜가 지목된다. 농협 하나로마트가 이래저래 중소상인과 골목상권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농협하나로유통 경영지원전략팀 신재원 팀장은 “농협 하나로마트는 지자체마다 상이한 조례를 준수하고 있다”며, “지역상인들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농축산물 상품 비중을 높이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재원 팀장은 또, “농협은 1970년 1월부터 마트를 운영했기 때문에 영업 시점으로 볼 때 선순위도 고려해야 한다”며, “(피해가 발생할 경우) 하나로마트 출점 또는 개장 단계에서 협의, 보상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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