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이것 모르면 장사 못해요”

친환경 채식주의 트렌드, 식음료·패션 등 전방위 확대

 

동물 학대와 죽임을 반대하는 친환경 채식주의 ‘비건’이 확고한 소비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사진=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

 

비건(vegan)이 유통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비건은 채소, 과일, 해초 등 식물성 음식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철저하고 완전한 채식주의자를 의미한다. 1944년, 영국 채식주의자들이 유제품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에 대한 개념을 탐구하던 중 시작을 뜻하는 ‘비기닝’(beginning)과 ‘베지테리언’(vegetarian)을 결합, ‘비건’(vegan)이란 용어를 내놨다.

8월 19일 한국채식연합(vege.or.kr)에 따르면, 우리나라 채식주의자 수는 2008년 15만명에서 2018년 150만명으로 급증했다. 특히 비건 인구는 50만명으로 추산된다.

 

동물은 음식이 아니다

‘비건 세상을 위한 시민모임’이 8월 9일 개최한 기자회견은 비건의 지향점을 분명히 일러준다. 이날 기자회견의 의제는 ‘동물은 음식이 아니다’ ‘고기는 동물의 시체이다’였다. 이들은 “인간은 육식 말고 채식으로도 우리 몸에 필요로 하는 모든 영양소를 안전하고 이상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기를 먹는 것은 인간의 식탐 때문이란 것.

이들은 또, “동물들도 때리면 아파하고 찌르면 고통을 느낀다”며, “인간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는 욕구도 동일하다”고 말한다. 먹거리를 위한 ‘공장식 축산’은 인류역사상 가장 끔찍한 범죄라고 규정한다. 인간도 동물이므로, ‘인간동물’의 ‘비인간동물’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중단해야 한다는 논리다.

채식주의는 육류나 생선을 어느 정도까지 먹느냐에 따라 여러 단계로 나뉘는데, 비건은 동물에게서 나오거나 동물실험을 거친 식품을 모두 먹지 않는 가장 엄격한 단계다.

하지만, 현재 유행하고 있는 비건은 채식주의자만을 위한 소비트렌드는 아니다. 비건 트렌드의 이면에는 동물 착취에 반대하는 ‘비거니즘’(veganism)이 있다. 비건 식습관에 머물지 않고 가죽제품, 양모, 오리털, 화학실험 제품 등 동물에서 나오는 모든 제품을 거부하는 운동이다.

이처럼 비건에 속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의식주를 위해 동물을 학대하거나 죽이는 행위를 거부한다. 반려동물이 급속히 확산된 우리나라에서도 비거니즘은 ‘선량한 소비’의 척도가 되고 있다.

 

한국비건인증원이 발급하는 비건인증마크. 사진-한국비건인증원

 

비건단체, 원재료 비건인증

비건에 속하는 소비자들은 소비과정에서 각 나라의 물보호단체나 비건단체가 인증한 ‘비건마크를 꼭 확인한다. 동물의 불필요한 고통과 희생이 따르지 않은 제품을 선택하기 위해 제품 패키지에서 윤리적 생산 방식을 인증하는 마크를 찾는 것.

완제품과 원재료 모두에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았음을 인증하는 글로벌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의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 이탈리아의 윤리적 비건 제품 인증 기관 ‘비건 OK’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한국비건인증원’이 비건인증을 하고 있다. 영국 ‘비건 소사이어티’, 프랑스 ‘이브사’와 달리 우리나라가 직접 설립한 최초 인증기관이다. 지난 6월 30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정한 화장품의 비건 표시, 광고기관 제1호로 지정됐다.

한국비건인증원이 비건인증마크를 부여하는 기준은 △동물 유래 원재료 사용 금지 △동물실험금지 △제품생산 공정 과정의 교차오염 금지 등 크게 3가지다.

이 업체는 식품첨가물이나 원료 생산 과정의 정제, 여과, 화학반응 등에서 소비자나 2차 제조자가 알 수 없는 갖가지 동물 유래 원료가 사용되는 것까지 확인한다. 소비자들이 세세히 알 수 없는 세부 원재료를 대신 확인하고, 비건 제품을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탈리아 비건인증의 경우 72년 전통을 가진 유기농 여성 위생용품 브랜드 ‘콜만’이 대표적이다. 이 업체는 동물실험을 배제하고 피부 접촉 비자극 테스트를 완료한 비건 생리대를 출시하고 있다. 패키지에 인쇄된 ‘VEGAN OK’ 마크는 제품의 모든 제조 과정에서 동물실험이 배제됐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심지어 라벨 등 포장재에도 동물성 원료가 포함되지 않았음을 인증한다. 커버부터 흡수체까지 국제유기농섬유기구(GOTS) 인증 유기농 100% 순면으로 만든다.

 

국내서도 비건인증 제품 속속 출시

비건은 채식주의를 지향한다. 비건은 식품업계의 블루오션으로 통한다. 비건은 까다로운 소수 소비자의 기준이 아니라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하나의 소비 트렌드로 확대 발전했기 때문이다.

우유를 대체하는 ‘베지밀’로 유명한 정식품의 경우 한국비건인증원으로부터 식음료 제품 3종에 대해 비건인증을 획득했다. 비건인증을 획득한 정식품 제품은 19가지 채소 및 과일즙 100%를 담은 과채주스 라인 ‘건강담은 야채가득 V19’, ‘건강담은 야채과일 V19’ 2종과 64가지 100% 국내산 농산물로 만든 생식 제품 ‘리얼 자연담은 한끼생식’ 등이다.

유제품이 필수인 아이스크림까지도 비건 제품이 인기다. 롯데제과가 지난 5월 출시한 나뚜루 비건 아이스크림은 두 달 만에 누적 판매량 7만개를 돌파했다. 나뚜루 비건 아이스크림은 국내 최초의 비건인증 아이스크림이다. 순식물성 원료만 사용해한국비건인증원의 동물성 DNA 검사도 통과했다.

비건은 패션업계서도 화제다.

영국 시장조사기관 ‘민텔’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참여자의 과반에 가까운 47%가 옷을 살 때 ‘동물 복지’를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비윤리적 방식으로 생산되는 모피의 대체 소재인 ‘페이크 퍼’(인조모피)와 윤리적인 방식으로 털을 채취했음을 뜻하는 ‘RDS(책임 있는 다운 기준) 인증’ 등 동물 친화적 가치관에 맞는 비건 패션 트렌드가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최근에는 가방이나 신발 등 패션 잡화에 사용되는 가죽 소재에도 비건을 적용한 브랜드들이 늘고 있다. 미국의 ‘볼트 쓰레즈’는 100% 식물성 버섯 가죽으로 만든 가방을 선보였고, 파인애플이나 선인장 등 질기고 튼튼한 섬유질의 특성을 이용해 신발이나 지갑을 만드는 ‘휴고보스’, ‘데세르토’ 등의 브랜드들도 주목받고 있다.

민텔 관계자는 “비건 트렌드가 주방에서 옷장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비건, 동물실험 금지, 지속가능한(sustainable) 소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천연인증, 친환경 패키징, 해양안전 플라스틱, 100% 재활용, 탄소 중립(carbon neutral) 등으로 시장 트렌드가 이동하고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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