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의 어느 봄 날. 온라인을 통해 공개된 음성 녹취 파일 하나가 온 국민을 분노에 휩싸이게 했다. 본사의 영업사원으로 보이는 한 젊은이가 계약관계에 있던 대리점주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욕설을 내뱉는 음성이 담긴 파일이었다.

욕설의 강도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영업사원의 요구사항이었다. 강제적으로 입금을 요구했다. 상식적으로 계약관계에 있는 본사직원의 정당한 요구라고 받아들여지기 힘든 내용이었다. 바야흐로 갑질이라는 용어를 순식간에 전국적인 유행어로 만들어버린 사건. 바로 남양유업 욕설 사건이다.

비슷한 시기에 몇몇 편의점주들은 생을 마감하는 방식으로 본사와의 고통스러운 계약관계를 종료하고자 했다. 일반적인 영업방식으로는 24시간 강제 영업 요구를 이행하기 힘들었다. 가족들이 총 동원돼 매장을 지켜야 했고, 그 과정에 갓난아이를 창고에 눕히고 매장을 지킨다는 한 여성점주의 눈물 섞인 하소연도 등장했다. 심지어 매장의 보안을 위해 본사가 설치한 CCTV가 정작 보안이 아닌 점주들의 감시에 사용된다는 증언도 나왔다.

국회에서는 이러한 갑질을 방지하기 위한 법률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계약관계에 있던 대기업 본사들의 불공정한 갑질을 방지하기 위한 대리점법과 가맹사업법이 필요했다. 유통대기업들의 무분별한 시장 진출로부터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유통산업발전법과 상생법이 강화돼야 했다. 건물주들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임차인들의 권리금마저 강탈했기에 상가임대차 보호법을 보완해야 했다.

남양유업 욕설파문이 터지기 이전 해인 2012년 대통령선거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경제민주화였다. 거의 모든 후보들이 경제민주화의 공약을 걸고 출마했고, 경제민주화의 창시자로 알려진 김종인 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참모로 둔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대통령이 당선된 이듬해부터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본격적으로 경제민주화 공약들을 하나둘씩 차례대로 파기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경제민주화는 보수여당이 책임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자영업자들의 갑질 피해 사례가 세상에 어렴풋이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로 약 10년. 과연 자영업자들의 경제민주화는 얼마나 진보했는가?

현재 자영업자들은 10년 전보다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 세계적 재난 상황이 도래하자 가장 취약한 사회계층으로 다시 한 번 중소상인 자영업자들이 등장했다. 본격적인 비대면 사회로의 전환은 전통적인 방식의 상행위를 유지한 자영업자들에게 직격탄이 됐다.

문재인 정부가 여러 방법들을 통해 재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지원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코로나19의 장기화의 늪에서 자영업자들을 고통은 점점 더 심화하고 있다. 단기 대책은 단기적 효과만 야기한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또다시 경제민주화다. 해결책은 근본적인 경제체제의 대변환이다. 아니 정확히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통해 근본으로의 회귀가 이뤄져야 한다. 유통대기업들이 무분별하게 골목상권에 진출하기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맹점, 대리점, 임차상인에 대한 본사와 건물주들의 불공정한 갑질이 발명되기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뒤틀린 관계를 복원하고 정상화를 구축해야 한다. 그 관계의 틀 위에 지원과 육성을 통해 코로나19라는 악마와 싸워 이겨야 한다.

국회에 잠들어있는 유통산업발전법과 상생법을 깨우자. 가맹사업법과 대리점법을 깨우자. 상가임대차보호법을 다시 뒤흔들자. 자영업자들의 숙원과도 같은 이 법안들을 통과시키고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자. 이 케케묵은 법안들의 입법 없이 자영업자들은 한 발자국도 더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없다. 경제민주화만이 자영업자들의 면역력을 길러 새로운 세상과 맞서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백신이다.

/ 이성원_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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