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춘 호_ (사)한국마트협회 정책기획실 이사
대구광역시의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이 2월부터 일요일에서 매달 둘째, 넷째 주 월요일로 바뀌었다. 이어서 충북 청주시가 평일 의무휴업 전환을 추진하다 지역사회의 대결국면으로 치닫고 있으며, 상인단체와 노동계는 집회와 소송을 통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평일 의무휴업 전환을 모색하던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은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
대형마트를 비롯한 대규모점포 및 준대규모점포는 유통산업발전법 상 매달 의무적으로 월 2회 휴업을 해야 한다.
이는 십수년의 공방 속에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으로 적용되었다. 그야말로 대기업의 시장 독과점에 따른 폐해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이자 최소한의 ‘유통업 상생’ 방안이었다.
홍준표 대구시장발 재점화된 의무휴업 공방전은 윤석열 정부의 규제완화 방침에 기인한다.
지난해 여름 대통령실의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를 국정과제 설문으로 내걸었다가 여론의 뭇대를 맞으며 홍역을 치른후 이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그런데 연말에 다시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은 대뜸 관계부처와 일부 관계단체를 모아놓고 괴상한 협약을 맺으며 대형마트 규제를 둘러싼 공방을 부활시켰다.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체인스토어협회, 전국상인연합회,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 등이 모여 의무휴업일 온라인배송 허용,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 등 대형마트 영업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협약 발표가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전국상인연합회와 수퍼마켓협동조합이 골목상권의 모든 중소상공인을 대표할 수 없다. 애초에 전통시장 연합단체인 상인연합회와 수퍼마켓 업종 단체를 골목상권의 다양한 업종을 대표할 수 없다.
대형마트와 취급품목이 겹치는 동종업종인 동네마트, 과일야채점포, 정육점, 잡화점, 생선가게 등이 협약에 참가한 두 단체에게 대표성을 위임한 바도 전혀 없다.
대구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위 두 단체의 지역조직이 참여해 협약에 서명한 것이 전부일 뿐이다.
유통산업발전법 상의 의무휴업 조문은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제12조의2 (대규모점포등에 대한 영업시간의 제한 등) ③ 특별자치시장·시장·군수·구청장은 제1항제2호에 따라 매월 이틀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하여야 한다. 이 경우 의무휴업일은 공휴일 중에서 지정하되, 이해당사자와 합의를 거쳐 공휴일이 아닌 날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할 수 있다. |
법률상에는 의무휴업일은 공휴일로 지정하되, 이해당사자와의 합의를 거쳐 평일로 변경 지정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여기서 바로 이해당사자의 범위, 대표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일부의 대표성을 마치 이해당사자 전체로 몰아간 것이다.
더군다나, 당초 법률 개정안의 취지에 기술된 대형먀트 종사자의 건강권과 휴식권 보장을 고려했을 때, 노동계 또한 주요한 이해당사자임이 분명하다. 구구절절 부연하지 않더라도 무리한 의무휴업 변경 추진이 아닐 수 없다.
세월을 거슬러 2011년으로 되돌려 보자.
대규모점포 등에 대한 영업시간의 제한과 의무휴업은 지난 2011년 12월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 근로자의 건강권 및 대규모점포등과 중소유통업의 상생발전”을 위한 목적으로 해당 법률인 유통산업발전법 개정·반영되었다.
이렇게 정착된 대규모점포 등의 월 2회 일요일 의무휴업은 유통업 종사 노동자의 건강권과 쉴 권리를 보장하고 골목상권 중소유통업을 보호하는 실물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2014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조사에서 대규모점포 의무 휴업일에 주변 골목상권 매출액은 10.4%, 고객 수는 11.4% 각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대규모점포를 운영하는 유통대기업들은 이러한 법률적 취지를 무력화하기 위한 시도를 진행했다. 의무휴업 무효 소송이 그것이다. 이러한 소송공방은 2015년 11월 19일 대법원 판결로 일단락되었다.
대법원은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유통대기업 6개사가 영업시간 제한 등 처분에 대하여 서울특별시 성동구와 동대문구를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하여 지방자치단체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원고 패소 판결하였다.
대법원은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 중소유통업과의 상생발전 등 규제로 달성하려는 공익은 중대하고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의무휴업일이 한 달에 2일이어서 영업의 자유나 소비자 선택권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렇게 일단락되었던 의무휴업 공방은 올해 다시 재점화 된 것이다.
몇 해 전부터 대형마트의 매출축소를 마치 의무휴업이 큰 영향인 마냥 호도하며 명절 대체 의무휴업, 휴업일 평일전환 등을 일부 지자체를 통해 제안해오다 정부교체와 함께 의무휴업 폐지를 공세화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대기업 측이 주장하는 대형마트의 매출하락의 과다출점, 이커머스(온라인) 유통채널의 확대 등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제 살 깎아먹기’로 표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 선거를 통해 당선된 이들이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보는 쪽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표를 계산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좀 더 편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인 때문이다.
그런데 10여 년 동안 매달 두 번의 일요일에 대형마트가 문을 닫았다고 해서 크게 불편했는가. 한달에 두 번 대형마트 종사자들도 일요일에 가족들과 나들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과도한 규제인가. 일년중 고작 24일의 의무휴업이 대형마트 실적이 휘청일 만큼의 근본 원이 되었는가. 전혀 아니다.
법률에 위임된 자치단체장의 지방행정의 사무가 입법취지를 무색케 한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이미 유통환경은 대기업에게 심각하게 기울어져 있다. 그런데 여기에 대형마트 의무휴업도 평일로 전환하고 의무휴업일에 온라인 영업(정확히 배송)을 허용하는 것이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민생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